평양검무

평양검무는 전통 민속 무용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춤이다.

생활과 밀접한 상고시대에는 사냥을 나가기 전, 사냥 후, 행운과 감사의 춤을 검을 들고 추었었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칼춤, 신라의 황창량의 칼춤, 고려시대엔 관기들에 의해 검무가 추어졌는데 동자 가면무 의로 계승되어 오다가 조선시대에는 그 형태와 내용에 변화가 있었다 . 세조나 성종 때 황창 검무가 처용무와 함께 연희 되었으며 조선후기 기녀가 검무를 추는 형태로 연희 되었다. 이렇게 흘러 온 세월 속에 평양검무는 18세기 전 지방의 춤으로 전승되다가 18세기 말 궁중에 수용 되어 각종 궁중 연행에서 활발히 공연되든 춤이다. 평양은 조선시대 지방 감영이 있었고 교방청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명기들에 의해 다양하게 검무가 연행되었다. 김홍도의 평양감사 향연도를 보면 연관정 연회나 부벽루 연회에서 항상 평양검무가 연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조의 몰락과 궁중 여악이 폐지되고 지방의 교방청이 해체되자 평양검무도 지방에서 궁중으로 다시 지방으로의 흐름으로 평양에 정착하여 중국과의 무역거래가 왕성하던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연희장에서 강인한 한국인의 이미지와 애국심이 강한 이미지를 중국인에게 심어주어 만만히 보이지 않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이미지를 심어 주는 큰 역할속에 무역거래에도 한몫을 크게 해냈다는 애국의 춤이라는 애칭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의 구전을 통한 평양검무는 상당한 인기가 있는 춤이었으며 가치가 높고 소중한 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요 장면 구성

평양검무의 형식과 구조 복색 음악 등으로 미루어 보아 타지역의 것과 차이성을 갖고 있는 향토색이 짙은 무용예술이다. 평양검무 음악은 장고, 피리, 대금, 해금, 북의 삼현육각으로 염불장단-타령장단-자진타령장단-타령장단 순으로 짜여 있고 특히 평안도식 피리가락을 주조로 한 장고 장단의 볶는 타령이 삽입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 느린타령 허튼타령 잦은 타령등으로 연주되는 이른바 시나위에 맞춰 추어졌었다. 현재는 앞부분에 염불장단이 삽입 되어져 보다 예술적으로 다듬어진 형태이다. 양손에 든 검은, 회전 검으로 가장자리에는 일곱 쌍의 제비가 날아갈 듯 달려 있고 칼자루 밑이 구부러져 있으며 다른 검무와 달리 동으로 제작되어 있다. 동작으로 들어가 보면 칼을 잡기 전 의식을 지내는 듯한 동작에서 시작 한다. 춤의 구성은 248검무로 이루어져 있으나 인원이 부족하면 6검무, 4검무, 2검무 등으로 추기도 하는데 반드시 짝수로 맞추어야 한. 형식은 원래 두명의 춤꾼이 상대를 이루며 추는 일종의 대무 형식의 군무다. 평양검무는 대체적으로 넷상대가 대무하는 팔검무가 유명하다. 칼을 들고 열을 지어 선 다음 시작된 춤사위는 판석도리 입춤, 앉은 춤, 칼춤, 연풍대로 이어진다. 입춤은 수상수저 동작과 일자사위 동작으로 엮어간다.

앉은 춤은 기본 동작인 수상수저 동작과 두 손 모아 허리춤, 옆으로 허리춤, 두 손 뒤로 모아 허리춤으로 엮어가고. 칼춤은 기본사위, 한 칼사위, 칼 뽑기 사위, 옆으로 칼 돌리기, 반돌기, 앉는 연풍사위, 까치걸음, 번개사위, 머리 쓸기, 인사사위, 빨리 돌기, 양팔 벌려 칼 돌리기,얹는사위돌리기, 앉어조춤, 상오리순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연풍대는 칼 끼고 도는 사위, 머리 쓸며 까치사위, 칼로 땅치기 사위, 돌아 기본 사위로 끝을 맺는다. 춤사위 하나 하나의 동작을 보면 부드럽게 넘어가다가도 갑자기 동작이 날카로움을 느낀다. 칼사위 중 양손에 든 칼을 밖으로 돌리다가 바닥을 콕콕 찍는 동작과 맨손 입춤 사위가 두드러지게 많고 팔을 벌려 들어 교차할 때의 동작과 칼놀림의 조화가 매우 특이하다. 춤사위나 칼놀림이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면서도 상당히 유연하고 섬세한 한국의 대표적 검무의 특징과 특색을 갖추고 있다. 정갈하고 절제되어 있는 듯하면서 무게가 있고 역동적이고 정 중 동이 조화롭게 나타난 활발한 움직임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1. 입춤

2. 앉은 춤

3. 칼춤